국민의힘 당 혁신위원장 인요한 임명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23일 당 혁신위원장으로 인요한(64세 존린)연세대 의대 교수를 임명했습니. 김 대표는 혁신위원장에 대한 인선 결과를 국회의 최고위원회의에서 발표하였으며, 이 인선은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김 대표는 인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한 이유로 정치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의지를 강조하며 국민의힘을 민심과 괴리된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고 진정한 쇄신과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기대를 표현했습니다. 또한, 김 대표는 보궐선거 패배 이후 당 내에서 쇄신기구 발족을 예고하고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혁신위 출범을 공식화하였지만, 위원장 인선에 어려움을 겪었던 내용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10월23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기현 대표가 당 혁신위원장을 인요한으로 임명한 배경을 설명한 내용입니다.
<김기현 당 대표>
지난 한 주간 우리 당의 혁신을 책임질 자리에 어떤 분을 모실지에 관해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매우 높았다. 혁신위원장은 우리 당의 쇄신 의지를 가늠하게 하는 자리인 만큼 당내·외 인사들로부터 두루 추천을 받았다. 우리 당의 약점을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진단하여 개혁을 이루어 내고, 취약지역, 취약계층에 대한 소구력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본다.
그러려면 당 안의 시각보다 당 밖의 시각이 더욱 객관적이고 정확하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우리 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 지향점에 대한 이해와 공유가 기본적으로 바탕 되어야 한다는 점도 깊이 고려했다. 참고로 위원장 인선 과정에서 그 권한이나 역할에 대해 어떤 제한을 가하는 조건을 제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접촉한 분들 모두에게 혁신을 위한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국민의힘은 당의 진실한 변화를 만들어 갈 혁신위원장으로 인요한 교수님을 모시고자 한다. 대한민국 특별귀화자 1호 인요한 교수님은 전주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자랐으며, 한국에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해 온 가문의 사람이다. 구한말 이후 4대째 한국에서 선교와 의료, 구호, 교육봉사를 이어온 린튼가의 자손으로 한국에 대한 오랜 봉사와 헌신으로 보수, 진보 정부를 망라해 많은 훈장을 받은 바도 있다.
스스로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히며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하는 등 지역주의 해소와 국민통합에 대해서도 깊은 안목과 식견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지난 8월에는 우리 당 모임의 발제자로 오셔서 정곡을 찌르며 가감 없는 쓴소리를 전해주신 바 있다. 오늘날의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로 타협의 부재, 배타적인 줄 세우기, 상대에 대한 증오와 배제의 문화 등 현실정치의 민낯에 대해 뼈아픈 고언을 하셨다.
정치 개혁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고 투철한 의지도 가지고 계신 만큼 우리 국민의힘을 보다 신뢰받는 정당으로 재탄생시키는데 인요한 교수님께서 최적의 처방을 내려주실 것으로 기대한다. 인요한 위원장을 중심으로 꾸려질 혁신위는 그 위원회의 구성, 활동 범위, 안건과 활동 기한 등 제반 사항에 대해 전권을 가지고 자율적, 독립적인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온전히 구성원들의 의지와 노력이다. 당의 소속된 우리 모두가 변화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절박한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옷만 바꿔 입는 환복 쇄신이 아니라 민심과 괴리된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것에 구성원 모두가 동참하여 당의 진정한 쇄신과 변화를 만들어 내어야 하겠다.
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계신 인요한 교수님을 가칭 혁신위원장으로 모시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오늘 혁신위원장 인선이 국민이 인정하는 매력 있는 정당으로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재명 대표의 당무 복귀를 환영한다. 당무에 복귀하면서 시급한 민생현안 해결에 집중하겠다고 한 것에 대하여 더욱 환영의 마음을 표한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민생현안을 국회가 풀어나갈 수 있도록 여야가 머리를 맞대게 되기를 바란다.
인요한 프로필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인요한의 한국에 대한 사랑과 봉사 정신, 그리고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니다. 그의 노력과 헌신으로 남녘과 북녘의 이웃들을 돕고 있는 이야기, 또한 한국 형 앰뷸런스를 개발하고 북한결핵퇴치지원사업을 시작한 경험도 담겨 있습니. 이 책을 통해 인요한 선생님의 나눔 정신과 한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정(情)에 대한 생각을 공감하고 나누며, 한국이 발전하면서 사라져 가는 가치에 대한 안타김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인요한 선생님의 삶과 봉사 정신에 감동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요한의 아버지 "인휴"
휴 매킨타이어 린튼(Hugh MacIntyre Linton, 1926년 2월 24일 ~ 1984년 4월 10일)은 미국의 건축기사 출신 개신교 선교사이며 대한민국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한국명은 인휴(印休)이다.
휴 매킨타이어 린턴(Hugh MacIntyre Linton)은 대한민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미국의 건축기사 출신 개신교 선교사이며, 한국명은 인휴(印休)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다소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휴 매킨타이어 린턴은 1926년에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선교사였습니다. 어렸을 때 잠시 일제 강점기 조선 전라남도 순천에서 보낸 경험이 있었으며, 그 후에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고 목사가 되는 과정을 거치며, 일제에 의해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휴 매킨타이어 린턴은 1947년에 로이스 베티와 결혼하고, 1950년에 컬럼비아대학교 신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 해군 대위로서 인천 상륙 작전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53년에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선교와 의료봉사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등대선교회를 설립하여 전라남도 순천을 중심으로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결핵퇴치 활동에도 매진했습니다. 그의 아내 로이스 베티 역시 결핵재활원에서 헌신적으로 일한 데에서 공로를 쌓아 1996년에 호암상과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였습니다.
휴 매킨타이어 린턴은 공황장애로 고통받았으며 1983년에 선교와 목회 분야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순천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들 중 하나인 인요한은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하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휴 매킨타이어 린턴의 가족은 선교와 의료 봉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아들 중 하나는 연세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브란스 병원-국제진료센터의 소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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