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을 위한 헌법적 심판의 중추 기관으로, 이를 이끌어가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각자의 경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정의와 헌법적 가치 실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현재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주요 프로필과 이력을 간략히 정리한 내용입니다.
문형배 재판관
문재열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965년 2월 2일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문재열과 어머니 정선 전씨 전말순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성장했다. 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대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하며 법조인의 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27년간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판사로 활동하며 재판 업무를 담당했다. 부산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했으며, 창원지방법원, 부산가정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로 일했다. 이어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와 부산가정법원장을 역임하며 지역 법관으로서의 전문성을 쌓았다.
2019년 3월 20일, 그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로 지명되었다. 이는 4월에 퇴임 예정이던 조용호, 서기석 재판관의 후임으로서 대통령이 지명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문재열 후보자를 "강자에게는 엄격하고, 약자에게는 관대한 판결을 통해 사법 독립과 인권 수호를 실천해 온 법관"으로 평가하며 헌법재판관의 역할에 적합한 인물로 소개했다.
2019년 4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한 그는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2024년 10월 18일에는 헌법재판소 소장의 권한대행을 맡으며 헌법재판소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재열 재판관은 헌법재판관 재임 중 일부 진보 성향의 판결을 다수 내놓아 주목받았다. 이는 과거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했던 경력 때문으로, 언론에서도 진보적인 성향으로 분류하며 다양한 사건에서 그가 내린 의견에 주목했다.
예상대로 그는 진보적 입장을 환영하는 판결을 자주 내렸으나, 일부 사건에서는 중도적 관점을 취하며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판결은 주로 헌법의 기본권 보장과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청와대가 처음 그를 지명하며 강조했던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그의 사명이 실제 재판 활동에서도 드러났음을 보여준다.헌법재판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그는 법치주의와 인권 보장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헌법 해석과 적용에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깊이 고민해 왔다. 2024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게 된 것은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헌법재판소 내에서의 신뢰와 리더십을 인정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문형배(文炯培)1966. 2. 11.
- 1983.진주 대아고등학교 졸업
- 1986.제28회 사법시험 합격
- 1987.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졸업
- 1992.부산지방법원 판사
- 1995.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 1997.부산지방법원 판사
- 1998.부산고등법원 판사
- 2001.부산지방법원 판사
- 2004.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 2007.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 2011.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지원장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부장판사 - 2012.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 2014.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 부장판사
- 2016.부산가정법원장
- 2018.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 2019.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미선 재판관
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970년 강원도 화천군에서 이발사의 딸로 태어났다. 학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같은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법조계에 입문하였고, 사법연수원 26기로 수료한 뒤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청주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부장연구관,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등 다양한 직책을 두루 거쳤다. 특히 법원 내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를 역임하며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발탁되었다.법원 내에서는 노동법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부터 노동법 연구에 매진하며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사회적 약자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지형 전 대법관이 설립한 노동법 연구소인 '해밀 아카데미'에도 참여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이 덕분에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후에도 대법원 부장연구관으로 재직할 만큼 신뢰받는 인재로 자리매김했다.이후 수원지방법원에서는 상사·노동 전담 재판부의 재판장을 맡으며 노동법 전문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대법원 연구관 경력을 제외하면 주로 일선 법원에서 재판 업무를 맡아온 정통 재판관으로 평가받는다.그의 판결 중 가장 주목받은 사례 중 하나는 유아 성폭력범에게 술로 인한 충동적 범행이라는 이유와 피해자 부모와의 합의만으로는 형량 감경이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실형을 선고하며 2009년 여성 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여성 인권 보장 디딤돌상’을 수상했다.2019년 3월 20일, 조용호·서기석 헌법재판관의 퇴임 후임으로 지명되었다. 청와대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를 위해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했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연소 헌법재판관으로 기록되었으며, 전효숙·이정미·이선애·이은애 재판관에 이어 다섯 번째 여성 재판관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또한, 역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의 여성 비율이 30%를 초과하게 되는 순간을 만들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재임 중이 후보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재임 중 주로 진보 성향의 판결을 내며 진보 진영에서 환영받는 의견을 다수 내놓았다.
그러나 특정 사건에서는 중도적 의견을 내거나, 양쪽 입장을 절충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헌법재판소 내 가장 강한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기영 재판관보다는 다소 완화된 진보적 색채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주요 판결들은 노동자 권리 보호와 성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을 강조하는 의견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그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와 헌법적 정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내리며 헌법재판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서 헌법의 기본권 보장과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도, 특정 사건에서는 법적 안정성과 실효성을 고려한 중도적 판단을 내리는 균형 잡힌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의 전문성과 경험이 헌법적 쟁점 해결에서 신중하게 발휘된 결과라 할 수 있다.
- 1988.부산 학산여자고등학교 졸업
- 1992.부산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 1994.제36회 사법시험 합격
- 1995.부산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석사)
- 1997.서울지방법원 판사
- 1999.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
- 2001.청주지방법원 판사
- 2005.수원지방법원 판사
- 2006.대전고등법원 판사
- 2009.대전지방법원 판사
- 2010.대법원 재판연구관(판사)
- 2013.대법원 재판연구관(지방법원 부장판사)
- 2015.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 2017.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 2019.헌법재판소 재판관
김형두 재판관
김형두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965년 10월 17일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주남중학교와 동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진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19기를 수료했다. 법조계에 입문한 후 1990년 5월 공군 중위로 임관해 군 복무를 이행했으며, 1993년 2월 대위로 전역한 뒤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1993년 3월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로 임용된 그는 전형적인 엘리트 법관으로 평가받는다. 판사로 재직하며 두 차례 해외연수 기회를 얻어 도쿄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도산법을 연구하며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근무하며 행정 경험을 쌓았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후 전주지방법원에서 잠시 근무한 것을 제외하면, 주로 대법원과 서울 중앙 및 동부 지역에서 요직을 거쳤다. 대법원에서는 총괄심의관과 총괄재판연구관을 역임했으며,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장을 거쳐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부장판사와 영장전담판사,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그는 2009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재직 당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을 맡아 집중심리를 통해 3개월 반 만에 사건을 종결했다. 이 사건은 당시 법조계에서 공판중심주의와 집중심리주의를 구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검찰과 변호인의 대립을 조정하며 공정하게 재판을 이끈 공로로 주목받았다. 이후 2012년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 특허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을 거쳤으며, 2015년에는 사법정책연구원의 제2대 수석연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21년 법원행정처 차장에 임명되며 법원 행정 업무의 중책을 맡았고, 서울대 동기이자 처장이었던 김상환 대법관과 협력하여 업무를 수행했다. 2023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복귀했으나, 이선애, 이석태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헌법재판관에 지명되었다.
2023년 3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그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적격으로 채택한 후, 3월 31일 헌법재판관으로 취임했다. 취임 후 2023년 11월에는 대법원장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조희대 전 대법관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김형두 재판관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재임하면서 보수 성향의 판결을 다수 내렸다. 취임 당시에는 정정미 재판관과 함께 중도 성향으로 예측되었으나, 이후 드러나는 판결에서는 보수적 입장이 명확하게 나타났다.
그는 주로 법적 안정성과 헌법적 질서를 중시하는 판결을 내리며 보수적 관점에서 헌법의 해석과 적용을 강조했다. 특히 공권력의 역할과 국가적 법질서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의견을 자주 냈다. 다만, 일부 판결에서는 중도적 입장을 보여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보수 성향은 헌법재판소 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한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건에서 법리적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다.
김형두(金炯枓)1965. 10. 17.
- 1984.동암고등학교 졸업
- 1987.제29회 사법시험 합격
- 1988.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졸업
- 1993.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
- 1995.서울지방법원 판사
- 1997.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판사
- 1998.동경대학 교육파견
- 1999.대전고등법원 판사
- 2000.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판사
컬럼비아대학 교육파견 - 2001.서울지방법원 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겸임) - 2002.서울고등법원 판사
- 2004.법원행정처 송무제도연구법관(겸임)
- 2005.전주지방법원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겸임) - 2006.법원행정처 사법정책제2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 2008.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장
- 2009.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 2012.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 2014.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2015.사법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2017.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제2수석부장판사
- 2018.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2021.법원행정처차장
- 2023.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2023.(현) 헌법재판소 재판관
정정미 재판관
정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부산에서 태어나 남성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계에 입문하였고, 사법연수원 25기를 수료한 뒤 1996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판사로 첫 임지를 시작했다. 이후 대부분의 경력을 충청도 지역에서 쌓은 지역 법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남편 김병식 고법판사와 함께 법관 부부로 유명하며, 이는 법관인사규칙 10조에 따라 근무지를 배치받은 사례로 기록된다. 정정미 재판관은 주로 대전고등법원 및 대전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맡으며 법리적 전문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동시에 보여주는 판결로 주목받았다.
그녀의 판결 중에는 2014년 대전지법 공주지원 사건(2014가합37)에서 건설폐기물처리사업과 관련된 행정처분 번복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원고 손을 들어준 판결이 있다. 이 사건은 행정청의 반복적인 행정처분 취소와 공사 중지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명확히 지적하며 행정 책임을 강조한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신혼여행 니코틴 살인사건(2018고합149)의 1심 재판장을 맡아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며, 생후 20개월 영아를 고문하고 살해한 사건(2022노6)의 항소심 재판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아동과 여성 인권 보호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법관인사규칙 10조 출신 첫 헌법재판소 재판관
2023년 3월과 4월 임기가 만료된 이선애·이석태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정정미 재판관이 지명되었다. 그녀는 법관인사규칙 10조 출신 최초로 헌법재판관에 지명된 인물로, 이는 오경미 대법관이 같은 규칙으로 대법관에 임명된 것과 함께 주목받았다.
헌법재판관 후보로는 정계선 판사와 함께 여성 후보로 논의되었으나, 정계선 판사가 과거 우리법연구회 및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이력으로 인해 논란이 되면서 최종적으로 정정미 재판관이 지명되었다.
2023년 3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는 강제징용 피해배상금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방안이 대법원 확정 판결에 반하지 않는다고 답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3월 30일, 국회로부터 ‘적격’ 판정을 받고 헌법재판관으로 최종 임명되었다.
정정미 헌법재판관은 재임 초기 중도 성향으로 예측되었으나, 이후 드러난 판결들에서는 진보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국민권익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은 그녀의 진보 성향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그녀는 종합부동산세 위헌 여부와 관련한 판결에서 소수 의견으로 위헌 의견을 냈지만, 대부분의 판결에서는 진보적 입장을 보여주었다. 기본권 보장과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중점을 두며, 헌법재판소 내에서 사회적 정의와 형평성을 강조하는 의견을 다수 제시했다.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정정미 재판관은 헌법적 가치와 법적 원칙을 중심으로 판단을 내리며,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적 정의 실현에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1988.남성여자고등학교 졸업
- 1993.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제35회 사법시험 합격 - 1996.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판사
- 1998.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
- 2000.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
- 2004.대전지방법원 판사
- 2005.대전고등법원 판사
- 2006.대전지방법원 판사
데이비스대학 교육파견 - 2007.대전고등법원 판사
- 2009.사법연수원 교수
- 2011.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 2012.대전가정법원 부장판사(겸임)
- 2014.대전지방법원·대전가정법원 공주지원장
대전지방법원·대전가정법원 논산지원 부장판사(겸임) - 2016.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 2019.대전고등법원 판사
국민권익위원회 비상임위원 - 2023.(현) 헌법재판소 재판관
정형식 재판관
김재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961년 9월 2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사법연수원 17기를 수료하고, 1988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판사로 첫 발을 내디뎠다.
김 재판관은 서울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청주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 다양한 법원에서 근무하며 폭넓은 경력을 쌓았다. 특히 재판업무와 사법행정 양측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법원 내 주요 직책을 맡아왔다.
2019년 2월, 그는 서울회생법원장으로 임명되며 회생·도산법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서울회생법원은 기업회생과 파산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으로, 김재현 재판관은 재임 기간 동안 회생 절차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법원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친 후 2021년 2월, 평생법관제 및 순환보직제의 일환으로 수원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복귀해 재판 업무를 이어갔다.
2023년 2월,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임명되며 또 한 번 법원 내에서 중책을 맡게 되었다. 고등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대전 지역 법조계의 중심에서 사법 정의 구현과 법원의 안정적 운영에 기여했다.
2023년 11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유남석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후임으로 김재현 대전고등법원장을 지명했다.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으며, 2023년 12월 18일 여야 합의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면서 그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공식 취임했다.
김재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뚜렷한 보수 성향의 법관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헌법 해석과 적용에 있어 법적 안정성과 원칙을 중시하며, 보수적 관점에서 공권력과 헌법적 질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려왔다.
헌법재판관으로서 김재현 재판관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법치주의 실현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며, 사회적 갈등을 법적 기준에 따라 조정하고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정형식(鄭亨植)1961. 9. 2.
- 1980.서울고등학교 졸업
- 1985.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 1990.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법학전공 석사과정 수료
- 1985.제27회 사법시험 합격
- 1988.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사
- 1990.서울가정법원 판사
- 1991.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 1992.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판사
- 1995.서울지방법원 판사
- 1997.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 1999.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사
- 2000.서울고등법원 판사
- 2001.대법원 재판연구관
- 2003.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
- 2004.청주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 2005.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 2007.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 2010.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장
- 2011.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 2012.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2014.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직무대리)
- 2019.서울회생법원장
- 2021.수원고등법원 부장판사
- 2023.대전고등법원장
- 2023.헌법재판소 재판관
김복형 재판관
김복형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968년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태어나 1987년 부산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계에 입문했고, 1995년에 사법연수원 24기를 수료하며 본격적인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 서울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첫 발을 내디딘 김복형 재판관은 이후 각급 법원에서 민사, 형사, 가사, 행정 등 다양한 재판을 맡아 법적 전문성을 쌓았다. 2002년에는 프랑스 파리 제2대학으로 장기 해외연수를 다녀와 프랑스 항소심 운영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해외 경험은 법관으로서 그의 법리적 깊이를 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8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임명되어 상고심 업무를 보조하며 법리를 다루는 경험을 쌓았고, 2011년에는 사실심 이원화에 따라 법관인사규칙 10조에 의거해 고등법원 판사로 선발되어 서울고등법원에서 7년간 항소심 사건을 담당했다.
2018년 김명수 대법원장의 첫 정기 인사에서 고등부장판사로 승진하면서 마지막 고등부장 승진 대상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고등부장 승진 후 강원도 춘천으로 발령받아 서울고등법원 춘천원외재판부 재판장과 춘천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역임하며 춘천 지역에서 3년간 근무했다.
김복형 재판관은 법관 재직 중 다수의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다음이 있다:
강릉 노파 쪽지문 살인 사건춘천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시절, 증거 불충분으로 관련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논란과 동시에 법적 원칙에 충실한 판결로 평가받았다.남성 피해 불법촬영물 대규모 유포 사건2022년 서울고등법원 재직 당시 김영준(범죄자)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단호한 법적 대응을 보여줬다.
이외에도 형사 및 민사 재판에서 법적 안정성과 정의를 강조하는 판결을 다수 내리며 재판관으로서의 신뢰를 쌓았다.
2024년 9월, 이은애 헌법재판관의 임기 만료로 인한 후임 추천 과정에서 김복형 재판관은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다. 9월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열렸고, 군 동성애 처벌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자유권이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며 주목을 받았다. 다만 대한민국 건국 연도를 묻는 질문에 17초간 침묵한 일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청문회 이후 법사위는 여야 합의로 그의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였고, 2024년 9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안을 재가하면서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공식 취임했다.
김복형 재판관의 성향은 아직 명확히 단정하기 어렵다. 청문회 과정에서 자유권 보장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며 비교적 중도적 입장을 드러냈으나, 보수 성향으로 평가되는 윤석열 정부의 지명을 받은 점에서 보수적 관점으로 분류될 가능성도 있다.
그의 전임자인 이은애 재판관이 김명수 대법원장 추천으로 임명된 후 보수 성향의 판결을 다수 내린 사례를 참고할 때, 김복형 재판관 역시 재판관 활동 중 다양한 쟁점에서 균형 잡힌 접근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김복형 재판관은 향후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여부를 심리하게 될 예정이다. 이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서 그의 첫 주요 심리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복형 재판관은 자신의 법리적 전문성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며 헌법재판소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 1987.부산서여자고등학교 졸업
- 1991.서울대 사법학과 졸업
- 1992.제34회 사법시험 합격
- 1995.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
- 1997.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
- 1999.울산지법 판사
- 2001.수원지법 판사
- 2004.서울중앙지법 판사
- 2006.서울고법 판사
- 2008.대법원 재판연구원
- 2010.대구지법 부장판사
- 2011.서울고법 판사
- 2018.서울고법 부장판사
- 2020.춘천지법 수석부장판사
- 2021.수원고법 부장판사
- 2022.서울고법 부장판사
- 2024.헌법재판소 재판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각자의 경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헌법적 갈등을 해소하고, 기본권 보장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헌법 해석과 적용에 있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다양한 사건들을 공정하게 다루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재판관들의 지혜와 통찰을 통해 헌법 수호와 정의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다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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